본문 바로가기
마스크로 띄워질 Div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③]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명훈 스포일러·한식당 뒷풀이

입력 2020.02.14 08:00 수정 2020.02.14 08:00

칸부터 오스카까지 현지 취재 후일담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③]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명훈 스포일러·한식당 뒷풀이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오스카 출장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취재기를 후일담 기사로 정리해봤다. 기자로서 이 순간의 감정이 퇴색되기 전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 영화의 큰 역사적 순간을 두 차례 목도한 기자로서 사명감 같은 거창한 감정은 아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이 퇴색되기 전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솔직한 소회를 끼적여봤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재 노트라는 것을 미리 말한다.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②]에서 이어집니다.


오스카의 날이 밝았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는 일 년에 세 번 비가 온다고 한다. LA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산타모니카 비치와 쏟아지는 태양이지만, 이날 시상식 날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돌비극장 앞에는 레드카펫이 깔렸고, 혹시 모를 호우에 대비해 천장도 마련돼 만일에 대비했다. 돌비극장으로 가는 길,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더니 급기야 한국의 장마를 연상케 하는 폭우가 내렸다. 옷이 흠뻑 젖었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 현장의 날씨를 전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영화제 기간 내내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비가 ‘축복의 비’처럼 느껴졌다. 지나고 보니 날씨도 복선이었다.


92번째 오스카의 막이 올랐다. 매년 국내에서 중계를 보며 기사를 썼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내가 할리우드에 와 오스카를 보고 있다니. 문득 지난해 ‘그린북’ 작품상에 대한 기사를 쓰던 모습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출장 내내 마음 졸이며 취재를 이어왔다. 최초의 오스카 출장. 회삿돈으로 취재를 하러 가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혹여 한국에서 중계를 보며 기사를 쓸 기자들보다 내 기사가 느리다면 비교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미리 ‘기생충’의 수상을 국제영화상 수상에 초점을 맞춰 작성해 놨다. ‘기생충’은 각본상에 가장 먼저 호명됐고, 감동이 밀려왔다. 국제영화상은 떼 놓은 당상이니 2관왕이구나. 부랴부랴 작성해놓은 기사를 고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감독상에 이름이 불렸다. 봉준호 감독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화는 감독 예술이다. 감독상은 어찌 보면 작품상이나 진배없다. 더군다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에 최근 파란을 일으킨 토드 필립스에 ‘1917’ 샘 멘데스 감독을 제치고 감독상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작품상보다 감독상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함께 노미네이션된 감독들은 애써 표정을 다잡았지만, 좋지 않은 감정이 얼굴에서 역력했다. 왠지 웃음이 났다.


작품상을 받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안고 할리우드에 왔건만, 감독상까지 3관왕이구나. 다시 기사를 고쳐 3관왕의 의미에 대해 한참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상에 다시 ‘패러사이트’가 불렸다. 등 뒤에 소름이 쫙 끼치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환호했다. 봉준호의 말처럼 오스카는 로컬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동양의 영화는 쉽게 인정하지 않는, 그들만의 잔치다. 약 8,400명에 달하는 아카데미 회원 중 80%가 백인이다. 감독상도 충격인데 작품상까지, 무려 4관왕이라니.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③]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명훈 스포일러·한식당 뒷풀이


기사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장혜진, 박명훈, 최우식, 박소담, 홍경표 촬영감독, 한진원 작가 등을 만나러 베벌리 힐스의 한 호텔로 이동했다. 우버 운전기사가 어디에 가냐고 물었다. 나는 “너 ‘패러사이트’ 아니? 오늘은 ‘패러사이트’의 밤이야”라고 답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기생충’ 팀은 기자회견장에 오지 않았다. 돌비극장에서 배우들의 차가 밀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기생충’ 주역들이 도착했다.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처럼 그 무거운 트로피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며 기자회견 현장에 들어섰다. 한진원 작가는 크게 환호한 탓에 목이 쉬었다며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입을 닫았다. 배우들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우리와 마주 앉았다. 송강호는 제일 구석에 앉아 후배들한테 영광을 몰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6개월 동안 타지에서 묵묵히 고생했을 송강호지만, 영광의 순간 누구보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봉준호 감독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큰 사람이었다.


송강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오스카상은 봉준호 감독의 영광이라는 것을. 물론 배우에게도 큰 무대이자 성과지만 시간이 지나면 배우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다른 배우들은 얼굴에 흥분감과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이는 LA 공항에서부터 감지된 분위기. 참여한 소감을 묻는 배우들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특히 박명훈은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대배우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큰 상을 받으러 오는가’라는 느낌도 들었다. 박명훈의 모습이 일종의 스포일러였던 셈이다.


이후 ‘기생충’ 팀은 밤새 오스카와 관련된 각종 파티가 밀려있다며 약 26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관계자는 당초 20분 만 기자회견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먼 길을 달려왔는데 주어진 시간이 고작 20분이라니. 허탈함도 밀려왔다. 자정이 넘어서야 호텔을 빠져나간 ‘기생충’ 팀의 일정에 대해 관계자는 “밤새 오스카 관련 파티가 있을 예정이라 바쁘다”라고 했지만, ‘기생충’ 팀은 새벽 2시부터 한인타운 한 식당에서 먹고 마시며, 밤새 뒤풀이를 했다.


기자회견은 얻을 것 없는 자리였다. 한국에서 취재하러 비행기 타고 그 먼 길을 갔건만, 힘 빠지게도 기자회견은 YTN 생중계와 온라인 실시간 방송을 통해 중계됐다. CJ ENM 홍보팀은 사전에 실시간 중계 금지는 물론, SNS 채널에 풀 영상 업로드도 안 된다며 막으려 했지만, 막아지지 않았다. 결국 못 막은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기자들은 YTN 등 실시간 방송을 보고 한국에서 기사를 쏟아냈다. 현장에서 말을 먼저 받아써야 하는 우리보다 더 빨리 ‘종합’, 심지어 ‘인터뷰’까지 붙여서 기사를 송고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 힘이 빠졌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만약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이 아닌 2관왕이었다면, 국내 언론이 앞으로 다시는 이 같은 현지 취재를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처럼 오스카에서의 취재는 전쟁이었다.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③]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명훈 스포일러·한식당 뒷풀이

['기생충' 칸→오스카 취재기③]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명훈 스포일러·한식당 뒷풀이


숙소로 이동해 밤새 기사를 작성했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쓸 수 있는 건 모두 긁어서 기사를 썼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리고 현장에서 보고 느낀 걸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현장에서 내 눈에 담은 풍경과 감상을 전했고, 다행히 기사 반응은 좋았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배가 불렀다.


세 시간 자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시상식이 끝난 후 현지인들의 반응을 취재하러 돌비 극장에 다시 나갔다. 영화제도 아니거늘. 돌비극장 문턱을 지겹게 넘으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에 ‘패러사이트’가 올랐다. 2018 ‘그린북’, 2019 ‘패러사이트’. 막상 현판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오스카는 시상식 직후 바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설치한다고. ‘기생충’의 이름이 올랐는지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현지인들에 중국, 일본 관광객도 넘쳐났다. 지난밤, 함께 전장에서 승리한 취재진도 속속 모여들었다. 다들 얼굴에 피로가 역력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패러사이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고, 현지인을 만나 수상 반응에 관해 물었다.


취재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돌비극장 문턱을 넘으니 사방에서 ‘패러사이트’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접근해 “너 ‘패러사이트’ 이야기하고 있었니?”라고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황급히 지면 배당이 떨어졌고, 취재를 서둘렀다. 하지만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최고다, 좋았다”가 아닌 ‘왜’에 대한 답변이 필요했다.


현지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 동양 영화에 대한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찬사와 기존 할리우드의 찍어내기식 상업 영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십 년 후, ‘기생충’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또, ‘기생충’이 앞으로 해외로 뻗어나갈 한국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직 개봉을 안 한 지역에 오스카 수상이 어떻게 작용할까. 오스카의 수상에는 분명 영화적 호기심도 깔려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단지 ‘강남스타일’처럼 지나갈 수도 있지만.


‘기생충’이 역사에 새긴 발자국은 유의미하고 값지다. 오스카로 피날레를 장식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여정은 끝났다. 이제 한국 영화계는 다음을 고민해야 할 때다. 봉준호 감독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우리는 제2의 봉준호의 부재를 인식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뷰티라이프 SNS매거진 '라이킷'
난리나닷컴 오픈

Hot Photo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행운의 숫자 확인 GO!

위로가기
마스크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