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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노트②]이기쁨 연출이 전하는 '생의 찬미'

입력 2021.03.24 16:05 수정 2021.03.29 15:58

연극 '관부연락선' 이기쁨 연출
실존 인물 등장하지만 가상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전하길"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나, 혜석', '난설' 등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전해온 이기쁨 연출이 또 한 번 여성의 우정과 성장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이 연출은 연극 '관부연락선'을 통해 외로움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더 나아가 생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려내며 보는 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연극 '관부연락선'(연출 이기쁨, 제작 플레이더상상·스텝스)은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도쿠주마루 관부연락선을 배경으로, 바다에 몸을 던져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이 살아있다는 상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윤심덕은 밀항을 위해 관부연락선에 숨어 지내던 홍석주에게 발견돼 목숨을 구하고,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배 위에서 함께 하루를 보내며 점차 우정을 쌓아간다.


[컬처노트②]이기쁨 연출이 전하는 '생의 찬미'


이기쁨 연출은 "한 번에 읽히는 희곡이 드문데, 이 작품의 대본은 한 번에 읽혔다. 한 번에 읽힌다는 건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장면의 정리가 깔끔하다는 뜻이다. 그런 지점에서 작품에 호감이 생겼고, 여성 두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설정도 매력을 느꼈다"고 '관부연락선'의 첫인상을 이야기했다.


이어 "공간도 제한적이고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다. 또 하룻밤 사이의 이야기 아닌가. 연출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주가 된다기보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들려주는 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작품마다 여러 방식을 취하는데, '관부연락선'은 특히 화려하거나 강렬한 이미지를 주기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윤심덕은 1920년대 경성의 신여성으로 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관부연락선' 속 윤심덕은 우리가 아는 강렬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철없는 새침데기 같아 보이다가도, 사랑스럽고 사려 깊다.


이기쁨 연출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개인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을 받았을 때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심덕이라는 인물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흥미로웠다. 내면의 윤심덕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지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선을 넘어서면 부담스러워지는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묘한 경계를 배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잡아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윤심덕을 다루는 작품이 꽤 많았는데, 그런 걸 고려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작품에서 그 인물로서 존재하고, 그 인물이 설득력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컬처노트②]이기쁨 연출이 전하는 '생의 찬미' '관부연락선' 공연 장면. 사진=플레이더상상·스텝스


'관부연락선'이라는 작품 자체가 윤심덕의 죽음 이후의 삶을 상상해 무대 위에 펼쳐내는 작품이기에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이 더욱 자유로웠다. 이 연출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거리가 많았다"며 "윤심덕은 실제로 존재했고 홍석주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윤심덕이 살아온 계층과 홍석주가 살아온 계층은 명확히 존재했다. 두 사람을 두 계층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설정해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윤심덕과 홍석주는 서로의 옷으로 바꿔 입고 서로가 일깨워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 연출은 '옷을 갈아입는다'는 행위에 대해 "복식은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덴티티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 옷을 바꿔입고 서로 낯설고 어색하게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삶으로 간다는 게 큰 의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굉장한 메타포라고 생각했거든요. 배우들도 무대에서 실제로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표현이 또렷해졌어요. 두 사람이 마주한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게 명확히 보여지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윤심덕과 홍석주는 배에서 내려 단단해진 마음으로 서로 다른 길을 나선다. 배 위에서 그 어느 날보다 뜻깊은 하루를 함께 보낸 두 사람이지만, 윤심덕은 이별을 앞두고서야 홍석주의 이름을 묻는다.


이 연출은 "옷이 그랬듯이, 석주에게는 이름도 자신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돌기둥 아래서 태어난 아이. 그래서 대충 지어진 이름. 그런데 다른 의미로 보면 돌기둥처럼 단단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심덕이가 석주에게 이름을 물어본다는 건 석주의 이름이 그런 의미로 새롭게 불려지는 순간이 아닐까. 응원과 위로의 지점으로 느껴진다. 그 사람을 조금 더 명확하게 기억하고 싶을 때 이름을 물으니까"라고 깊이감 있는 해석을 전했다.


[컬처노트②]이기쁨 연출이 전하는 '생의 찬미'


윤심덕이 바다에 빠지고, 홍석주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면서 장면이 전환된다.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이면서, 이기쁨 연출이 가장 많이 고민한 장면이다. 이 연출은 "대본상으로는 심덕이 등장하지 않고, 석주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거로 알고 있다. 사실 노래를 부르는 심덕이를 석주가 때려눕히는 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왠지 심덕이를 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석주가 심덕이의 물리적인 목숨을 구하는 거로 시작하면서 서로 구하고, 구해주는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기쁨 연출은 '관부연락선'이라는 작품이 결국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길 바랐다. 그는 "생의 의지에 대한 지점이 저에게는 가장 크게 다가왔고, 그 지점을 또렷하게 보여줘야 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살아지는 그 과정들이, 다른 삶을 살았지만 비슷한 외로움을 지닌 두 여성이 연대하고 지지하는 이야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가 관객분들에게도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이기쁨 연출은 '나, 혜석', '난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을 주로 선보여 왔다. 여성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는 곧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연출은 "사람을 알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않나.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열 가지가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고 생각한다. 작업을 할 때도 그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의 저를 생각해보면, 저도 제가 여성 중심 서사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여성 서사 작품이 많아지고,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추세가 되면서 공연계가 확실히 무언가를 도전해보고 있는 시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멀리서 지금을 바라보면 역사적으로도 언급될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이런 추세가 더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여성 서사가 특별하지 않다고 느껴져야 충분한 건데, 그러려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컬처노트②]이기쁨 연출이 전하는 '생의 찬미'


차분하지만 위트 넘치게 답변을 이어가는 이기쁨 연출에게는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의 곧은 심지가 느껴졌다. 이 연출은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웃었지만, 이내 "일단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들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진지한 눈빛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저는 제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한다. 최대한 모든 회차를 모니터하려고 한다. 단순히 작품을 확인하는 걸 넘어서, 제가 그 이야기를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렇게 하네? 재밌다'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 제가 제 작품의 회전문 관객인 셈이다.(웃음) 그렇게 계속 봐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지난 1년간 코로나 19라는 큰 장애물을 겪으면서, 연극인으로서 많은 감정이 오갔다. 이기쁨 연출은 "공연은 생계와 직결되는 지점이 아니라는 시선이 있지 않나. 물론 그런 시선도 이해는 하지만 공연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에는 더 나은 인간이 되게끔 하는 좋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공연뿐만 아니라 엔터 장르, 순수 예술 등 문화적인 부분들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은 삶과 밀접하다고 늘 생각해요. 일상생활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연극의 형태가 무궁무진하거든요. 연극이 낯선 게 아니라는 인식이 많이 생기고, 연극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연극이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은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해요. 연극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도 사실이지만, 그냥 집에 가서 엄마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도 연극이 될 수 있어요. 연극은 모든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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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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