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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학대당한 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야

입력 2021.01.21 17:14 수정 2021.01.21 17:14

16개월 여아 양부모 학대로 사망
"정인아 미안해" 안타까운 사건 공분
아동학대 조명 영화 경종
'도가니'법 재정…사회적 파장 커
문제의식 담은 '아이'·'고백'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아동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이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해당 사건에 분노한 많은 이는 강력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법 집행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아동학대 예방 정책을 총괄하는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아동학대 조기 발견 및 보호·지원과 학대수사 업무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공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양모에 아동학대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를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故정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향한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화는 우리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누군가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아름다운 기억을 환기해주는 기능도 하지만,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작품에는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생겨나기 전인 2019년 역대 최다인 2억2,660만 명 관객이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후 내 손 안에서, 또 안방에서 OTT 플랫폼 등을 통해 영화를 즐기는 이들도 늘어났다. 우리는 커진 소비만큼 영화가 지닌 힘과 영향력에 관해 부정할 수 없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배우 송강호의 말처럼 영화는 잘못된 세상을 지적하고 상기시키는 힘을 지녔다. 영화계는 일찍이 아동학대 범죄에 관심을 갖고 분노·고발하고 지탄해왔다. 어른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기성세대의 문제를 꼬집었다. 오는 2월에도 아동학대의 문제점을 짚은 영화가 잇달아 관객에 선보인다.


[돋보기]학대당한 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야 영화 '도가니' 스틸/사진=삼거리픽쳐스


'도가니법' 재정

2011년 9월 개봉한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한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인화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장애학생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8명 이상의 장애 학생들에게 성폭력이 상습 자행된 실제 사건을 무겁게 다루고 있다. 2005년 6월 이 학교의 보육사가 지역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제보하여 외부에 알려진 뒤 경찰 수사가 진행되었고, 4명이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으나 모두 가벼운 징역형과 집행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영화 개봉 이후 광주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분이 증폭되자 광주시교육청이 감사에 나서고 경찰은 재수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도가니법'이 재정되기도 했다. '도가니법'이라 불린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 7년, 10년으로 형량을 대폭 늘렸으며, 무기징역까지 범위를 넓혔다. 또한 장애인 여성·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범죄의 공소시효도 폐지됐다. 아울러 장애인 보호ㆍ교육 시설의 장(長)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행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형이 가중된다.


아동학대 경각심 일깨운 '어린 의뢰인'

영화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은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당시 8살 소녀가 멍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과 검찰은 11살 언니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발로 차니까 동생이 죽었다는 언니의 자백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수사 결과에 숨진 아이의 변호인단이 구성됐고,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계모는 1년 넘게 의붓딸을 상습 폭행하고 학대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2019년 영화로 제작돼 아동학대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일깨웠다.


[돋보기]학대당한 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야 사진='어린 의뢰인' 스틸

[돋보기]학대당한 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야 영화 '미쓰백' 스틸


사실적 묘사로 경종 울린 '미쓰백'

이지원 감독이 옆집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화했다는 '미쓰백'(2018)은 2015년 인천 11세 소녀 가스 배관 사건을 통해 아동학대의 문제를 제기한다. 당시 11세인 딸을 3년 넘게 감금해 굶기고 상습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동이 맨발로 창문을 탈출해 슈퍼에서 과자를 집어 들다 주인에게 발견돼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120cm에 16kg로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영화는 이미 2017년 제작이 완료됐으나 1년간 표류 끝에 개봉됐다. 제작 의도에 공감한 한지민은 출연료를 낮춰서라도 영화에 참여하겠다며 의지를 보였고, 그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아이'·'고백' 조심스러운 터치

오는 2월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 두 편이 극장에 걸린다. 김향기·류현경 주연 '아이'와 박하선 주연의 '고백'이 관객과 만난다.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아영(김향기 분)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 분)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시작되는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그린다. 김향기가 보호종료아동으로 아동학과 졸업을 앞둔 대학생 아영 역을 맡아 생계수단으로 베이비시터를 선택한 배역을 연기하고, 류현경이 베이비시터 아영을 만나 고단한 삶 속에서 위로를 필요로하는 영채로 분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를 연기한다.


21일 진행된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아이'의 연출을 맡은 김현탁 감독은 "결핍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호종료아동 묘사에 대해서는 "영화로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 굉장히 조심스러웠다"라며 상업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로부터 관심받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영화를 구상했다. 가족의 달라진 형태에 집중했다. 굳이 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렸으나 그들의 이면에 치중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고백'은 7일간 국민 성금 천 원씩 1억 원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이 일어난 날 사라진 아이, 그 아이를 학대한 부모에게 분노한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를 의심하는 경찰, 나타난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을 그린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양심 테스트와 학대하는 부모, 구해주는 유괴범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러니한 질문을 던진다. 배우 박하선이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들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회복지사 역을 맡았다. 세상 모든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깊은 여운을 안길 전망이다.


[돋보기]학대당한 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야 사진=영화 '고백' 스틸


영화 관계자는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 제작 과정에서 실제 사건을 취재하며 큰 충격을 받을 때가 많다"며 "사건은 발생 초기에 이웃, 수사 관계자, 단체 등에 관심받지 못한 채 방관 돼 사망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또 사건 보도 후 일회성 관심에 그치거나 잊혀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연기자들은 실제 사건 속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미리 살피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충분한 상의를 거쳐 촬영을 시작한다"며 "아동학대를 당하는 연기를 하는 아역배우들의 경우 촬영장에 심리상담사를 배치해 촬영을 진행한다. 자칫 아동에게 큰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는 장면의 경우 상담사와 이야기해 촬영을 생략하거나, 대본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아동학대 소재를 차용한 작품의 경우 홍보 과정에서도 큰 책임감을 느낀다. 아동학대나 피해 과정 등 불행을 상업적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 주의하고, 실제 사건 관련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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