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스크로 띄워질 Div

[포커스]'시지프스'가 여성을 소비하는 법

입력 2021.03.31 14:58 수정 2021.04.01 17:03

JTBC 10주년 특집 '시지프스'
조승우·박신혜·성동일外
'미투'(MeToo)운동 폄하 논란
시대착오적 대사도
불필요한 멜로 전개
시청률 하강곡선

[뉴스컬처 이이슬 기자] "여자야, 세상이야? 선택해." 시그마(김병철 분)가 한태술(조승우 분)을 향해 묻는다. 이는 극을 관통하는 주요 복선이 되는 질문. 한태술은 고민한다. 미래인들이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인 업로더를 개발한 후 핵전쟁이 발발하고 이로 인해 터전이 무너지고 세상에는 슬픔과 절망,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찬다. 업로더가 없다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이와 동시에 미래에서 온 강서해(박신혜 분)도 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서해를 구할지, 아니면 세상을 구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현재 방영 중인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이하 '시지프스')는 천재공학자 한태술과 미래에서 온 강서해의 여정을 그린 판타지 미스터리물로, 현재와 2035년을 오가며 전개된다. 제작비 약 200억 원을 투입한 사전 제작 드라마로, 지난해 조승우는 5개월, 박신혜는 7개월간 각각 촬영했다. 조승우는 데뷔 후 첫 판타지 장르에 도전했다. 해외 드라마에서 주로 선보여온 타임슬립물을 국내를 배경으로 거대한 세계관에 펼칠 것으로 예고돼 기획 단계부터 시선을 끌었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10주년 드라마로 야심차게 선보인 작품이다.


'시지프스'의 극본은 이제인·전찬호 작가가 맡았으며, 연출은 '푸른 바다의 전설', '주군의 태양' 등의 진혁 PD가 맡았다. 지난 2월 17일 1회 방송은 5.6%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해 2회에서 최고 시청률 6.7%를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했으나 7회 4%대로 하락하더니 11회에서 4.4%의 자체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대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 큰 스케일에 비춰볼 때 다소 맥없는 성과다. 이는 시청자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수치로 분석된다. 높은 기대 속 화려하게 출발한 '시지프스'. 시청자는 왜 등을 돌렸을까.


[포커스]'시지프스'가 여성을 소비하는 법


'미투' 운동 폄하 논란

2월 18일 방송된 '시지프스' 2회는 '미투'(나도 당했다, #Me_Too) 운동 폄하 논란이 불거지며 도마에 올랐다. 극 중 단속반에 끌려간 한태술을 취조하는 장면에서 단속반 팀장 황현승(최정우 분)의 대사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 한태술은 죽은 줄 알았던 형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쫓다 슈트케이스를 발견했다. 궁금한 마음에 열어본 태술은 이를 집으로 옮겼다. 그러자 단속국은 한태술을 잡아 형의 슈트케이스 행방을 물었다. 황현승은 "여성 편력이 꽤나 있으시더라. 요즘같이 세월이 하수상할 때는 몸조심 하는 게 최고인데"라며 한태술을 협박했다. 그러면서 "내일 '미투' 기사 나갈 거다. 회사 주식이 한 10%는 빠지겠다. 모레는 불법 향정신성 약물 상습 복용으로. 국내 최고 과학 기술자 출신 대표가 사실은 '약쟁이'였다면 회장님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셔야 할 것이다"라고 계속해서 협박 강도를 높였다.


"'미투' 기사가 나간다"는 말은 '미투' 폭로를 조작한 거짓 보도가 이뤄질 예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허구의 창작물인 드라마에서 악당의 입을 통해 전해진 말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대사는 무척 위험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미투' 폭로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담았고, 자신의 생계 터전 등 모든 걸 걸고 용기 내 '미투' 운동에 동참한 모든 피해자의 호소를 훼손시켰다. 제작진은 이 대사의 무게를 알았을까. 몰랐다고 해도 문제고, 알았다면 더욱더 문제다. 어떤 의도에서든 이 대사는 전파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 촬영했다 하더라도 이후 편집했어야 맞다. 대사를 쓴 작가를 비롯해 이를 연출한 PD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배우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방송을 시청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는 반응이 나오며 뜨거운 비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미성숙한 시선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바라보는 쪽이 많았다. 앞서 미디어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미성숙한 모습을 드러내 왔고, 문제로 지적돼왔는데, 이번에 그 한계와 부실을 노출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투' 운동은 2017년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할리우드에서 성폭력을 당한 다수 여성이 그의 만행을 고발하며 벌어진 사회운동으로, 이후 전 세계에서 용기 낸 고백이 이어졌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 지위가 가해자들보다 낮아서, 혹은 피해 사실 입증을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피해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사회 곳곳에 숨은 이들에게 당당히 '나도 당했다'고 외치자는 운동이 '미투'다. 국내에서도 지난 수년간 홀로 트라우마와 싸우던 피해자 다수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일각에서 국내 분위기가 여전히 가해자 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에게 증거를 요구하고, 과연 진실이 맞는지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2차 가해가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 피해자는 '미투' 폭로 이후 지독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일상생활에 극심한 지장을 받고 있다.


[포커스]'시지프스'가 여성을 소비하는 법


'미투'를 협박의 수단으로 삼은 해당 장면은 실제 고통받은 수많은 피해자를 깎아내렸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제작진은 인물을 겁박하는 협박 수단으로는 다른 상황을 충분히 설정할 수 있는데도, 굳이 '미투' 대사를 넣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시지프스'는 이 대사 한 줄로 모든 배우, 제작진의 노력 역시 폄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극이 지닌 재미가 충분한데도 작품과 함께 무지한 대사가 반사적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JTBC는 지난 2월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사과했다. 세종시 사회복지협회 사무처장 이혜윤 시청자위원은 "미투와 약물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겁을 주는 장면이 다소 불편한 감이 있었다"며 "드라마의 내용 구성상 굳이 미투와 약물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윤희웅 JTBC 콘텐츠전략실장은 "조승우를 협박하는 장면에 '미투'와 약물이라는 점을 활용한 점, 언론에서 많은 질타가 있었다"며 "내부적으로도 반성의 목소리가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은 시청자분께서 불편함을 느끼시는 것을 인지를 하고 있다. 앞으로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는 이런 부분이 없도록 노력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자와 세상' 중에 선택하라니…

'시지프스'는 '미투' 운동 폄하뿐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젠더 감수성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시그마는 한태술을 향해 "여자야, 세상이야"라고 물으며 선택을 종용한다. 여성은 한 영웅의 극적 장치로 작용하기 위한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여성을 남성이 대의를 이루기 위한 선택지로 그리는 데 그친 것이다. 미래 세계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강서해는 그 자체 서사로 아주 흥미롭다. 그런데 이 모든 서사가 한태술의 충실한 선택지로 존재하기 위한, 극적 장치였다는 점은 여태껏 시청해온 시청자들을 힘 빠지게 한다.


아직도 '여자냐 세상이냐' 묻는 빌런이 드라마에 존재한다니. 드라마 제작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시대를 담기 위해 애쓰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시지프스'는 홀로 과거로 향하는 모양새다.



[포커스]'시지프스'가 여성을 소비하는 법


조승우의 멜로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시지프스'의 아쉬운 지점은 더 있다. 조승우와 박신혜의 멜로 비중이 늘어나며 작품이 SF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라 멜로 드라마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극 초반 한태술은 사망한 줄 알았던 형을 물불 안 가리고 쫓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인물과 얽히고, 급기야 업로더의 정체를 알게 됐다. 서해와의 만남 역시 형을 쫓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태술에게 형을 쫓는 목표가 사라졌다. 물론 핵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눈앞에 둔 상황이지만, 갑자기 모든 걸 잊을 만큼 서해에게 빠진 한태술의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업로더와 핵전쟁이라는 화두를 뒤로한 채 서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모습에 비중이 커진 게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서해와의 키스신을 시작으로 불쑥 전개되는 둘의 애정씬도 극의 템포를 루즈하게 만들었다.


긴장감 넘치게 달려가도 모자랄 판에 조승우와 박신혜의 멜로가 과속 방지턱에 걸리듯 턱턱 걸리며 극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깊은 연기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조승우, 성동일 등 배우들의 좋은 연기력이 무색할 만큼 '시지프스'의 연출에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청자들이 조승우에게 기대한 건 과연 멜로일까.


제작진은 아직도 시청률을 반등시킬 가장 좋은 재료가 멜로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 '시지프스'는 멜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1회에 최저 시청률을 찍었다.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이킷'

Hot Photo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행운의 숫자 확인 GO!

위로가기
마스크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