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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보도지침' 구준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입력 2021.09.20 16:00 수정 2021.09.20 16:00

연극 '보도지침' 구준모 인터뷰
"축적된 에너지에 중점"
"욕심 내려놓으니 편해졌어요"

[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구준모의 인생 모토는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것. 과유불급의 자세는 '보도지침'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승욱을 마주하게 된 구준모는 특유의 단단함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한 유연함을 곁들여 인물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과장되게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그 인물로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무대에 선 구준모의 승욱은 한층 묵직하게 빛났다.


연극 '보도지침'(연출 황희원, 제작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은 제5공화국 시절인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연을 맺은 네 친구가 '보도지침'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다시 만나 대립하는 모습을 통해 신념과 선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2016년 초연 당시 작품을 처음 접한 구준모에게 '보도지침'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억압되어 있던 시기에 연극이 이런 내용을 다룬다는 것이 놀라웠고, 배우들이 주는 에너지도 인상 깊었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터뷰]'보도지침' 구준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5년이 흐른 후, 구준모에게 '보도지침'이 찾아왔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 아닐까'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걱정은 이내 믿음으로 바뀌었다. 구준모는 "공연을 해보니 우리가 옛날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됐다. 그때만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에 푹 빠져서 보는 관객분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안심이 됐다"고 털어놨다.


구준모는 보도지침을 폭로한 친구 주혁과 정배를 변호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변호사 황승욱 역을 맡았다. 구준모의 승욱은 '축적된 에너지'에 집중했다. 그는 "승욱이는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술에 빠져 있고, 엄마는 가난에 힘들어한다. 그런 상황에서 성장하면서 내재된 슬픔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고, 법대에 가서 변호사가 되기까지 그런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인물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네 명의 인물이 겹치지 않아야 각자의 캐릭터가 잘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캐릭터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승욱이가 가난하다고 해서 소심하고 조용하게 행동하고, 스스로의 트라우마에 갇혀서 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승욱이로서 뭔가를 더 보여주려는 것보다는 승욱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에너지를 더 많이 생각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승욱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정배는 유쾌하고 긍정적이고, 주혁이는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고, 돈결이는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으니까. 근데 승욱이가 꼭 어떤 역할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냥 승욱으로서 존재해도 되고, 구준모가 연기하는 승욱이어도 되고요. 처음에는 승욱이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 많이 편해졌어요."


[인터뷰]'보도지침' 구준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이번처럼 직업적 특성이 크게 드러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변호사로서 오롯이 무대 위에 있기 위해 변호사를 다룬 각종 자료를 찾아봤지만, 결국에는 '변호사의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준모는 "변호사라고 해서 꼭 어떤 말투, 어떤 자세로 얘기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변호사라고 해서 작품 속에서 변호사로서만 존재하려고 하면 네 친구의 관계가 보이지 않을 것 같더라. 변호사로서 서류를 바라보기보다는, 친구를 바라보고, 친구들과 교류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고 느꼈다"고 중점을 둔 부분에 관해 이야기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정의의 편에 서는 변호사이지만, 과거 승욱은 자신들의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극이 승욱의 탈출구가 되어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구준모는 "승욱에게는 내재된 억눌림이 있지 않나. 연극을 통해 내재된 부분을 터트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연극에 푹 빠졌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승욱은 현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승욱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연극 무대를 향한 열정만을 지녔던 승욱이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를 공연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함께 고문을 받고, 침묵하는 삶을 살면서 점차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만난 변호인은 승욱이 새롭게 발을 내딛는 기폭제가 됐다.


구준모는 "극 중 승욱의 독백에서 나오는 것처럼, 부산에서 본 변호인의 모습이 승욱에게는 가장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며 "친구들을 변호하겠다고 결심할 때도 그 힘이 가장 컸다. 승욱이는 부산에서 만난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까지 고민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경험으로 인해 친구들을 보호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보도지침' 구준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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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변론 전, 승욱이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드리운다. 구준모는 "승욱이는 이 재판이 질 것을 분명히 알았다. 형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더 편한 자세로 재판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극 중에서 인물들이 과거를 오가지 않나. 실제로 재판을 하면서도 승욱이에게 그 과거의 기억들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 생각도 들고. 그러다 보니 표정이 복잡미묘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면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현재의 장면을 연기할 때 과거 장면의 힘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런데 '보도지침'은 과거 장면의 힘이 현재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후변론을 하기 전에 과거 네 친구의 기억의 힘을 받아 복잡한 감정이 들게 돼요."


'보도지침'은 지난 상반기 선보인 '알앤제이'에 이어 두 번째 연극 작품이다. 구준모는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오히려 내가 조금 내려놨을 때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앤제이' 하면서 배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편하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워서 점점 완벽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놓게 됐고, 그러다 보니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많이 유연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연극 무대만의 매력도 다시금 되새겼다. 구준모는 "특히 이번에는 극장 구조도, 무대도 특이하지 않나. 퇴장도 거의 없고, 객석이 정말 가깝다 보니 관객분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다 보인다. 재판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관객이 지켜보는 에너지가 두려울 때도, 힘이 될 때도 있다. 배우로서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진짜 저희의 목소리로 대화하는 데에서 오는 뜨거움도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보도지침' 구준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구준모는 2014년 뮤지컬 '보이첵'으로 데뷔한 후 2017년 '빌리 엘리어트'의 토니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재생불량소년'부터 '전설의 리틀 농구단', '쓰릴 미', '라 레볼뤼시옹', '알앤제이' 그리고 '보도지침'까지. 매 작품 캐릭터를 오롯이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유연함을 바탕으로 실력을 입증받으며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고 있는 구준모이지만, 여전히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이 깊다.


구준모는 "삶에 대한 고민은 배우의 숙명"이라며 "배우로서의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고, 직업으로서의 고민도 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순간이 없는 것 같다. 제가 지금 당장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니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걱정이 많이 덜어졌다. 전에는 계속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어떻게든 길이 있겠지'라는 생각"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오늘도 '과유불급'이라는 인생의 모토를 가슴에 품고 배우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의 중심을 잡는다. 구준모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 에너지를 쓰고, 아껴야 할 때 아끼는 건 좋지만, 내 에너지를 쓰고 싶을 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단단한 내면을 드러냈다.


"살아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해요. 이 세상은 절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성공할 수 없거든요. 사실 예전에는 저를 20, 남들을 80만큼 생각했는데, 그게 저에게는 되게 힘든 일이었어요. 지금은 그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계속 배우고 변화해가고 있어요."


사진=김태윤 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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